고려말 왜구침입이 몽골 때문에
원나라는 고려의 반란을 막고자
지방군을 모두 없애고
개성을 지키는 소수의 군만 허락한다.
원나라의 의해
무장해제 상태가 된 고려
왜구들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고려를 침략한다.
사실 왜구는 고려의 상대가 안되었다.
당시 주무기 활을 비교해 보면
220cm 크기 일본활의 사거리는 80m
1m 크기 고려활의 사거리는 180m
하지만 강력했던 군대가 사라지면서
고려는 왜구들의 먹잇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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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탈하려는 왜구에게 저항하자
최씨부인의 팔다리를 잘라버린 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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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에 살던 최씨 부인과 아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왜구..
남원에서는
3~4살 여자 아이의 붙잡아 배를 갈라
내장을 걷어내 깨끗히 씻고
쌀을 넣어 고사를 지낸 뒤
그 쌀로 밥을 해먹은 왜구들
왜구들이 잡아간 고려인
3만명 이상
고려 사람들을 잡아다 노예장사
(주로 건장한 남자를 잡아다 노예로 삼았다)
왜구 배를 젓는 일
전투에 참여시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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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제 약탈
일본은 물론 중국에서 조차 흉내낼 수 없었던
고려불화
현재 전세계에 100점의 고려불화가 있다.
그 중 90여점이 일본에 있다.
한국에 남아있는 건 10점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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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본거지 대마도
금을 녹여 만든 불교경전 '묘법연화경'
고려1340년
"어떤 경로로 입수를 했는지 알수가 없다"
- 일본 박물관 학예사
"어떻게 이 절에 오게 되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 대마도 향토사학자
약탈해간 고려 문화제는
돈을 받고 팔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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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보관하는 조창을 노린 왜구.
조창을 육지로 옮기자
이를 따라 칩입했던 왜구들
나중엔 내륙 깊숙히 왜구들이 들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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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의 침입을 맞아 고려가 힘을 쏟은 건
외교적인 노력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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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들이 싸우려면 군량미가 필요하다
일본은 산이 많아 식량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
일본 열도 내부 식량이 부족하면
밖에 나가 약탈을 하게 된다
1350년 2월 왜구 침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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