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은 왜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해야 한다고 했을까?
유인촌이 갑자기 한글을 사랑하기 시작한걸까요?
근데 왜 광화문 현판을 붙잡고 늘어질까요?
그 이유는 이전 광화문 현판이 한글이었기 때문입니다.
네 과거의 광화문은 박정희가 콘크리트 떡칠로 복원을 했었고
그 현판은 자신이 직접 쓴 글씨로 판 현판이었습니다.
광화문은 이후 수많은 돈을 들여 콘크리트를 제거하고 복원해야 했고
그 현판은...
극우 보수들의 극악한 반발 속에
힘들게 박정희 현판을 끌어내리고
정조의 글씨체로 복원 될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시절, 유홍준 문화재청장 시절의 업적이죠.
그렇습니다
극우 보수들은 이게 꼴보기 싫은 겁니다.
이제 다시 박정희의 한글 현판을 복원하자 라는 것이죠.
유인촌이 말한 한글 현판은 다른 현판이 아니라 분명 박정희의 현판일 것입니다.
예? 박정희의 현판은 버리지 않았냐고요?
그럴리가요.
박근혜 정부 시절 한 권력기관의 관계자가 박물관에 전화를 걸어와 “잘 보관하고 있어라”라고 당부까지 했다고 하며
지금도 여전히 국립고궁박물관의 수장고에는 박 전 대통령이 쓴 광화문 현판이 보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의 글씨에 대한 근자감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보자면...
그가 여기저기에 글씨를 남발하고 다닌 가장 대표적인 예로
충남 아산 현충사의 현판을 들 수 있습니다.
현충사는 원래 1707년 현충사가 세워질 때 숙종이 사액한 현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권의 정당성에 이용할 목적으로 현충사를 증.건.하고
진짜 현충사는 구 본관으로 뒤에 짱박고
신 본관으로 앞에 내세운 곳에
박정희가 1967년에 자기 글씨로 현판을 내겁니다.
이에관해 이순신장군 가문의 종부 최순선씨가 박정희 현판 철거를 요구했지만
신 현충사는 박.정.희.의 작품이고, 그 역사성과 일체성을 훼손하기에 안된다며 문화재청이 묵살합니다.
물론 이 외에도 박정희가 박아놓은 쇠말뚝 현판은 많이 있었고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경기 파주시의 화석정(경기도유형문화재 제61호) 현판,
경기 수원시 화령전(사적 제115호·정조의 사당)의 운한각(雲漢閣) 현판, - (2008년 서예가 정도준씨의 글씨로 교체)
경북 안동시의 영호루(映湖樓) 현판
경기 고양시 행주산성(사적 제56호) 내 행주대첩비와 충장사(忠莊祠·권율 장군의 사당) 현판,
경기 여주군 영릉(사적 제195호) 내 세종전(세종의 유물전시관)과 훈민문(訓民門) 현판,
강원 강릉시 오죽헌(보물 제165호) 내 문성사(文成祠·율곡 이이의 사당) 현판,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내 영모각(詠慕閣·서애 유성룡의 유물전시관) 현판,
대구 달성군 순천 박씨 집성촌에 세워진 육신사(六臣祠·사육신 사당) 현판,
인천 강화도 전적지 보수화 정화 기념비등이 그것입니다.
이 외에도 국보, 보물, 사적이 아닌 곳들에도 박정희의 끌씨는 쇠말뚝처럼 박혀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종로2가 탑골공원 정문인 ‘삼일문’ 은 독립선언서 글자를 집자해 바꾸었고
전남 영암군 월출산 도갑사의 해탈문(국보 제50호) 한자 현판은 조선후기 이광사의 글씨체로 바뀌었으나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이순신 장군 동상,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인 수원농민회관,
서울 은평구 구파발 통일로 들머리 ‘통일로’ 비석,
서울 홍제동∼독립문 도로를 확장하면서 세운 ‘무악재’ 비석 등은
아직도 살.색마 박정희의 글씨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 다시 그 쇠말뚝 글씨들을 되살려 보겠다는 것이
유인촌과 극우들의 계획이 아닐까요?
이상 뜬금없이 유인촌이 광화문 현판 한글화를 들먹인 것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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